내가 좋아하는 보수주의자 OOO에게

이글루엔 글을 오랜만에 쓴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 범위 내에서 너에게 말을 하려니, 그 제한이 어의를 모호하게 하고, 그러다보니 네 화를 더 돋구는 것 같아 여기에 글을 써서 링크할 생각을 했다. 이왕 쓰기로 한 것, 너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잃고 싶지 않은 다른 보수주의 지지 지인(말이 이상하네)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어진다. 오해받고 미움받을 걸 각오하고라도 쓸 수 있는 한 정직하게 쓸 생각이다.

네가 [인권]이야기를 했다. 다른 [인권]을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또 다른 어느 [인권]은 제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마 너나 다른 평범한 보수주의자들은 그 앞에 더 구체적으로 [최소한으로] [부득이한 경우에만] 같은 문장을 추가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건 "나도 인권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더 큰 大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더 작은 인권을 조금 제약할 수도 있다는 건데, 왜 내가 인권을 무시한다고 자꾸 말하느냐?!" 이런 억울한 마음의 발현이다. 물론 난 그게 진심인 걸 안다.

이 대목에서 내가 자꾸 쓰는 [무지한 국민]이라는 표현에 대한 애기를 꺼내야겠다. 무지하다는 건 무식하다는 것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꽤 다른 말이다. 학력이 높아도 합리적이거나 지성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권] 얘기로 돌아가보자.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흔히 쓰는 [경우에 따라 제약할 수 있는] 인권의 예는 흉악범죄자의 인권이다. (사형제도 얘기도 비슷한 논점을 가진다) 즉, 저런 흉악한 범죄를 지었는데 그 범죄자의 인권을 왜 자꾸 얘기하냐? 그럼 피해자의 인권은 소중하지 않다는 거냐?  너도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지 않니? 그럼 그게 왜 [무지]한 건지 얘기할게. [인권]이란 개념은 왜 인류사에 등장했을까? 그건 강한자와 약한자, 기득권자와 귄리에서 소외된 자로 세상이 너무 극단적인 구분을 이루면서 등장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천부인권] 사상의 바로 그 인권이다. 인권은 누가 그 범위를 인위적으로 정하거나(주로 강자가 정하게 되지), 제약하거나,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사상이다. 강한 자는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지. 법으로, 기존의 질서로, 다수의 힘과 위계로. 그런데 약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판사가 부랑아 범죄자를 징역형에 처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부랑아의 범죄가 아니었다. 부랑아는 사실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능력이나 재주, 힘이 없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판사도 틀릴 수 있다. 그 틀릴 수 있는 판결의 대상에서 약한 계층은 더 취약하다. 그래서 인간은 재심, 삼심을 제도화 하고, 국선변호인제를 만들고, 사형제를 폐지하려고 하고(잘못을 되돌릴 수 없으니까) 법조계 내부의 권한을 분산시켜왔다.

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왜 말안하는 거냐?고 물을 때 그 묻는 이는 사실 스스로 '무지'하다고 광고하는 것과 같다. 애초 [인권]이란 [약자의 인권]을 뜻하는 거라는 사상적 배경을 모르고 있다는 걸 스스로 밝힌 거니까. 그럼 정작 억울한 쪽인 피해자의 인권은 누가 지키냐고? 피해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강력히 합의된 메이저 법인 [형법]과 기타 무수한 법이 있는 거지. 피해자는 밝혀진 피해자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자'이다. 강자라서 상대적 약자가 된(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지만)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위치를 가졌다. 기존의 규율과 사회의 냉대와 분노가 고스란히 그 범죄자를 향한다. 그래서 인권주의자들의 관심의 대상은 이 경우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다시 말하지만 피해자는 '인권'을 따지기 전에 이미 강력한 법으로 보호받는다. 그 강력한 '법'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게 되어 있다. 또 다시 말하지만 인권이란 그런 것이다.

솔직히 넌 진보든 보수든 그냥 지들 이익 위해 물고 뜯고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다수이기 때문에 내가 [무지]하다고 비난하는 것이고, 그런 국민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너와 내가 살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사회가 이렇게 혼탁한 거다. 넌 왜 내가 분노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지? 행정부와 대통령을 감시할 감사원장에 대통령 비서를 앉히고, 의회를 견제할 부처장에 그 의회출신 여당 의원을 앉히고,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금융기업이라고 할 지주회사 수장 자리 대부분에 자기 친구나 동창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일에 '분노'하지 않으면서, 넌 너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건 그저 '비리'나 '부정'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본질적으로 좌우하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에 대한 문제인데? 물론 민주당이나 민노당, 진보신당 뱃지를 달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무수한 [가짜]들이 있는 것을 너나 나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짜라고 해서 그들 진영의 [가치]가 가짜인 건 아니다. 반대로 보수진영의 정치가들 중에도 정말 소신있게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고, 청렴결백한 삶을 사는 정치가들도 있겠지. 그 하나하나의 인간 때문에 그 가치가 옳고 옳지 않아지는 게 아니라, 그 가치의 본질이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안 다음에 내가 어느쪽을 지지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르겠다'라는 답지는 현실세계에 없다.

예를 들어 배가 가라앉고 있다. 한쪽 사람들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부터 구명보트에 태우자고 하고, 한쪽 사람들은 세상에 더 큰 도움이 될 중요인사들부터 태우자고 한다고 치자. 물론 양쪽엔 자신의 이해관계(아이가 있어서 전자를 지지한다든지, 자기가 유명인사라서 후자를 지지한자든지) 때문에 한쪽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고해서 양쪽 가치가 똑같이 무의미한 개싸움인 건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한 편엔 너처럼 '왜 싸우는지 이해가 안된다'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럼 싸우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까? 두쪽이 다 틀렸다는 거냐? 그럼 누구부터 타지? 물론, 그냥 반반씩 태우자고 할 수도 있다. 그게 현실세계의 '정치'지.

만약 정치를, 그저 반대편에게서 빼앗고, 다시 빼앗기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면, 그 '무언가'는 무얼까? 이익? 그것도 주로 사익? 이 논점 자체가 왜 보수주의적이냐 하면 세상의 모든 현상을 보는 시각의 근저에 [약육강식] 혹은 [약육강식 질서 속에서의 경쟁]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흑인인권운동을 하는 백인이나, 동성애자 차별반대 운동을 하는 이성애자나, 베트남전을 반대한 미국인이나, 서울대 재학중이면서 서울대 폐지운동에 서명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그럼 무얼까? 물론 그 중엔 치기어린 희생정신이나 그또한 정교한 이해타산일 뿐인(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감상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이미 말했듯 분명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같은 사람을 굉장히 싫어하면서도, 그가 진정 자신의 사상을 확신하고, 또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으니 전적으로 틀릴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나는 그를 싫어하면서도 '화'를 내지는 않는다. 또 예를 들어 나는 노무현 대톨령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지만(실은 거의 정반대의 정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역시 자신의 가치관에 확고했고 일관적이었던 것을 알고 있다.

긴 글이 되었지만, "피해자의 인권은 그럼 어떻게 할 거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무지'하다는, 적어도 사상적으로 무지하다는 얘기에만 주목하면 된다. 그 하나가 무슨 대표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다른 모든 사안들에 대해서도 실은 '입장'이 다른 게 아니라 '알고 모르는' 정도가 다르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런다. 자신이 어느쪽이냐 어느쪽이 아니냐, 혹은 아무쪽도 아닌거냐 얘기를 하기 앞서 그 '어느쪽'이라는 게 '어떤 사상. 가치'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고, 배우고, 듣고 하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 설마 내가 좋아하는 너를 무지하다고 몰아붙이고 쾌감을 얻으려고 이렇게 말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슬프구나) 아니면 내가 왜 힘빼서 잔뜩 조심해가며 이런 글을 쓰고 있겠니....

잘 알려진 장하준 교수는 몇 권의 책을 써서 내가 거칠게 한 이런 얘기들을 사실은 더 스트레이트하게 했다. 근데 장하준 교수가 무슨 새로운 걸 얘기한 게 아니라 이미 양쪽의 학자들, 이론가들, 그 지지자들은 다 잘 알고 있는 얘기다. 알고 있어서 지지하는 건 또 얘기가 다른데, 너같은 사람들은 늘 말한다. "난 어느 쪽도 아닌데 하여간 그런 일로 화내고 싸우고 뭔가 불만에 가득차서 말하는 건 보기 싫다" 바로 그게 네가 어느 한쪽의 골수 지지자라는 증거인데, 내가 걱정하고 화나는 건 넌 네 스스로가 그쪽의 지지자로 강력히 기능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도, 인정하지도, 회의하지도 않는다는 거다.

너는 은근 네가 가해자로 여겨지고 있다고 불편해하는 것 같다. 홈페이지를 봐도 그렇고 트위터를 봐도 그래. 그것도 오래전부터. 근데 내가 꼭 해주고 싶은 얘기는, 만약 네가 가해자라면, 그건 네가 부유해서도, 지위가 높아서도, 빈곤층의 적개심 대상이라서도 아니라, 네가 서있는 땅이 어디인지 그 땅에는 어떤 푯말이 붙어있는지 제대로 내려보지 않으려고 해서-일 거다. 그런데 너는 늘 이 모든 일을 [빼앗길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빼앗으려는 사람들의 대상이 되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피해의식이 똑똑한 너의 혜안을 가리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실은, 정말로 그런 것이기를-하고 희망한다.

네가 믿지 않아도 할 수 없지만,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by 현카피 | 2011/03/17 12:44 | 트랙백 | 덧글(1)
건설적? 건설적!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문득 귀를 기울이고 들은 CM이 있다. 어느 건설회사의 광고였는데, 카피가 이렇다. "가장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회사는 건설회사다"

모르긴 해도, 카피라이터든 클라이언트든 어느 누군가는 이 워딩을 떠올려 놓고 스스로 꽤 흡족해 했을 것 같다. 광고나 마케팅 쪽 업계 종사자들이 즐겨 쓰는 말로 '인사이트 있는' 접근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재미있는 언어유희이기도 하고, 업의 본질을 잘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간결하다고.

물론, 저 카피를 쓴 사람이 특별히 정치경제적 가치를 드러내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심코 드러내 버린 가치관 때문에 그걸 듣는 나는 출근길이 영 편치 않았다. 감상을 요약하자면, 무섭구나, 이 나라가 걸고 있는 저 소름끼치는 드라이브는- 정도라고 할까.

'건설적' 이라는 건 뭔가?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또 외교적 수사를 빼고 말한다면 '일단 무언가 가시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보자는,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가치다. 옳으냐 그르냐 보다, 그것이 효율적이냐 아니냐, 생산적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는 가치다. 그리고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온 사회, 정상적인 21세기적 사회 의식 수준에 도달한 사회에서라면 입밖에 내는 순간 조롱당할 수준의 가치다.

그런데, 어느새 이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런 지향을 드러내는 일이 자랑스러워 할 일이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그 반대쪽 지향은 말 그대로 태동 단계에서 멈추고, 오히려 그 수태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보수반동의 기세만 등등히 올려주는 꼴이 되었다.

유엔 경제,사회, 문화적 권리 위원회는 어제 제네바에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적하고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이미, 지난달 아시아인권위원회(AHRC)가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ICC)에 서한을 보내 한국의 인권등급을 A에서 B로 낮추어 줄 것을 공식 요구하였고, 그에 앞서 ICC의 제니퍼 린치 위원장은 유명한 외교통상부 장관 앞으로 서한을 보내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등급재심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국제기자협회(IFJ)는 작년, 언론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치적 압력과 간섭을 비난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전세계에 타전하였다. 물론, 이런 기사들을 조중동은 보도하지 않거나, 억지논리로 외면하거나, 한줄짜리 기사로 흘려버린다.

어제부터 4대강 사업의 첫 삽질이 전국에서 시작되었다. 다양한 계층의 필사적인 반대는 차치하고서라도, 아직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즉 사업비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사업부터 시작하고 보자-는 생각이 국가적인 레벨에서 통용되고 용인된다는 점에서 과연 현 시점의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법치국가가 맞는지, 21세기의 보편적 의식수준을 가진 나라가 맞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법 제정 과정은 잘못됐지만 그 결과인 법률안은 유효하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법의 근간을 통째로 뒤흔들 말을 서슴치 않는 집단이 바로 그 법을 다루는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라는 포복절도할 아이러니가 가능한 나라, 집을 빼앗기고 울부짓는 사회최빈곤층 약자들의 시위에 경찰특공대를 출동시키는 나라, 그 무자비한 진압과정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도, 저항한 사람들의 화염병엔 중형의 실형을 선고하고, 진압한 경찰의 수장은 칭찬하고 영전시키는 나라, 서민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의 그림자 속에서 소득세를 낮추고 간접세 비중을 높혀 노골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을 극가속시키고, 결국 OECD 국가중에서도 부의 재분배 꼴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그리고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나라, 이런 나라에 살면서 겨우, 예산이 정해지지 않았어도 일단 삽질은 시작하고 보자-는 '건설적'인 생각을 회의하는 것은 지극히 배부른 생각일지도 모른다.

몇년 전, 개인별로 맞춤 재테크를 해주고 재산 포트폴리오를 짜준다는 컨셉을 광고하고 싶어한 어느 증권회사의 광고 시안에 내가 "나라가 잘 살아야 국민이 잘 산다는 생각, 이제 국민 하나하나가 잘 사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라고 바꾸어 생각하면 어떨까요. 국민에 대하여 경례-" 라는 카피를 썼더니 당장 높은 분들이 질겁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쪽이 질겁할 일이고, 어느쪽이 질겁하지 않을 일일까? 똑같은 뇌를 가졌으되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에 나는 살고 있다. 내가 선택해 태어난 나라가 아니고, 내가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싫으면 니들이 떠나라-고 손가락질 하고, 누군가는 정말로 회한으로 뒤돌아보며 이 땅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떠날 수라도 있구나 하며 부러워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말하자면, 나는 '건설적'인 생각이 좋은 생각이라며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사람이 책임지고 짓는 아파트에선 절대 살고 싶지 않다. 모름지기, 그 '건설적' 생각의 결과물이란 게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by 현카피 | 2009/11/11 16:35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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